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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세기 반에 걸쳐 기계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성형외과 분야는 필연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인해 각종 사고가 늘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외상이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역사에 있어 여러 가지 전쟁은 다양한 창상치유에 대한 수요를 만들었고, 창상 분야의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창상 치유 원칙이 정립되었으며, 피부, 연부조직, 근육, 건, 신경 등 각종 조직의 변위 내지 이식 역시 빠르게 발전하였다. 이는 바로 성형외과라는 새로운 의학을 발전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20세기 전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발전한 재건성형분야는 이 후 세계 경제가 부유해지고 국민생활이 윤택해 지면서 자연스럽게 미용성형 분야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찾은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미를 추구하려고 하는 본능적 욕구는 수술을 통한 미의 증진으로 이어졌다.
이에 오늘날의 성형외과학은 그 목적에 따라 재건성형외과와 미용성형외과로 발전되었으며 이는 선진의학의 필수 불가결한 분야로 그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1945년 광복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에 있어 성형재건을 위한 외과적 술기는 전무하였다. 당시 의료계에 종사하였던 의사들에 의하면 그들은 성형외과라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광복 후 서양 의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외국 문헌의 유입, 설파제나 페니실린 등의 항생물질의 사용과 맞물려 외과분야가 발전하게 되며 한국의 의료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선교의사들 중 몇몇 외과의사들이 심하고 고질적인 피부궤양, 피부결손, 또는 화상 후유증인 안면과 수지의 변형 및 구축 등을 가진 환자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피부편 이식을 했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의료진이 많은 전상환자 진료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는데, 특히 이들 중 미국 군의관 Dr. Millard와 부산에 있던 스웨덴 적십자 병원선의 Dr.Stenstrom은 언청이 수술 및 각종 재건수술 등의 성형외과 전문진료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유능한 외국 의사들은 우리나라에 잠시 머물렀을뿐, 우리나라의 외과 내지 성형외과 분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이어 휴전으로 사회가 점차 정돈되어 가자 사회 전반에 걸쳐 서양 문물이 유행처럼 밀려 들으올 때 우리 의료계에도 예외 없이 파급된 것이 그 당시 말로 “정형”이라는 것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전파된 소위 육질 주사라는 색다른 방법으로 코를 높이고, 유방을 키우는 등 실제 파라핀 주입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불법 행위가 “정형”이라는 이름으로 만연되어 갔다.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육질 주사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당시가 성형에 대해 극히 무지한 시기였던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휴전 이후 급격히 우리 나라의 경제가 개발되어 가던 시기에, 전쟁시기 혹은 그 이후에 서양에서 입국하였던 군의관 혹은 여러 의료선교사에 의해 성형외과 분야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또한 구미 각국에서 유학을 끝낸 의사들이 선진의학을 습득하고 대학 등으로 유입되게 되어 이들이 우리나라 의료계에도 성형외과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실감하게 되며 우리나라의 성형외과 탄생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성형외과의 태동기가 시작되었다. 구미 각국에서 유학을 끝낸 의사들이 선진 의학을 습득하고 대학 등으로 유입되게 되어 이들이 우리나라 의료계 에도 성형외과 전문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실감하게 되었다. 1961년 미국에서 성형외과를 전공하고 미국 성형외과 전문의자격을 획득한 유재덕 박사는 1961년 8월 연세대학교 부속 세브란스병원에서 성형외과 전문진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나라 대학에서 성형외과 전문진료 및 교육을 시작한 시초이다.
1964년부터 성형외과학의 학생강의가 시작되었고 또 성형외과 전문의 수련도 시작 하였지만 이것은 일반외과의 테두리 안에서 실시되었고, 대외적으로 의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성형외과의 학문적 보급은 역시 학회를 중심으로 한 학술활동이 주역이 되어 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해를 거듭할수록 성형외과는 하나의 특수 전문진료과목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드디어 1966년 5월 15일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의 전문의사 30여 명이 발기인이 되어 대한성형외과학회 창립총회를 갖게 되었다.
이 모임에서 성형외과를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 발전시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회칙을 초안하여 통과시켰고, 임원(회장: 민광식, 이사장: 유재덕)을 선출하니 이로써 대한성형외과학회가 시작되었다.
대한성형외과학회가 창립된 이후 학술집담회, 연구 발표회 등을 통하여 성형외과의 기초적 개념의 전파, 학술 교류 등의 노력을 함으로서 일반인들과 의사들의 성형외과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이 점차 고조되어갔다. 육성기에 들어선 학회는 그 회원수도 매해 증가했고 국제학술교류도 이루어지는 가운데, 1966년 당시 대한의학협회에 신설 학회로서 가입을 신청하게 되었다. 1969년 대한의학협회 산하 분과학회로 인준을 얻었고, 1970년에는 국제성형외과학회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의 가맹이 승인되었다.
이 시기에 학회는 매년 가을에 개최하는 연례학술대회를 비롯하여 30여 회의 중앙 학술집담회, 10여 회의 특별강연회를 가지며 진지한 학술 연마를 도모하였다. 회원수도 최초의 30여명에서 100여명에 이르렀고 1974년에는 대한성형외과학회지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한편 학회는 성형외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잠정적으로 설정하였고 이에 준해 일반외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친 후 성형외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하였다.
1973년 10월 정부는 늘어나는 성형외과 환자의 진료를 위해 개정의료법 시행세칙을 공포하여 성형외과를 전문 진료과목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제 까지의 18종 전문진료과목이 19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성형외과 전문의 수련제도가 신설되었고 1974년 일반외과 전문의 고시에서 20명의 잠정적 성형외과 전담의사를 성형외과 전문의로 소급 인정하게 되었다. 1975년 부터는 학회가 독자적으로 수련교육과 전문의자격 고시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1975년부터 10년간은 성형외과학회의 성숙발전기로서 국제적으로 뒤진 학문의 향상을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시기이었다. 1967년 로마국제학회(4th Congress, IPRS)에서 두안면기형의 획기적인 수술방법이 발표되었고 1970년 초반에는 미세수술시대가 열려 각종 조직의 single stage 이식방법이 소개되었다. 1977년에는 지방제거성형술 등이 발표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국내 수련병원에서도 성형외과 학술대회 및 학회지를 통하여 우수한 환자 진료 실적과 학문 연구의 결과들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두안면골성형술(craniofacial surgery)이 보고되었고, 수지의 근 이식, 요도하열의 재건술 등이 성형외과 전문의에 의해 발표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대학병원에서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혈관수술이 시작되어 피부편의 유리이식, 절단된 수지의 재접합 등이 실시되었고 1980년대 초반부터는 미세수술을 이용한 재건술이 보편화된 성형수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학회는 중앙 집중을 벗어나 지역 중심의 학술집회도 필요하다고 인정, 1978년에 부산경남지회를, 1979년에는 대구경북지회를 발족하여 지역회원 상호간의 지식 교환을 통한 학문적 발전을 유도하였다.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창립 20주년(1986)을 계기로 학술활동을 가일층 활성화하여 연례학술대회에 이어 춘계학술대회를 추가하고 매년 1∼2명의 외국 저명학자를 학술대회에 초청, 지식 교환과 술기 습득 등 회원의 국제무대 진출기반을 다지는데 노력하였다.
또한 각 수련기관도 각기 나름대로의 국제교류를 통해 세부 전문분야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학회창립 30주년(1996년 11월)을 기해서는 본 학회는 제 41차 대한성형외과학술대회를 자학회 학술대회인 제 18차 대한수부재건외과학술대회, 제 14차 대한미용성형외과학술대회와 함께 통합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한성형외과학회는 2016년 창립50주년을 맞이하였다. 1975년 최초 성형외과 전문의 22명의 배출을 시작으로 매년 시행된 성형외과 전문의 고시는 창립 50주년을 맞이 하여 누적 전문의 2242명을 배출하였다. 또한 1974년 대한성형외과학회지를 발간하며 끊임없이 학술적인 발전을 도모한 결과 국내 학회지의 발간 및 발전은 물론 대한성형외과학회 회원들의 외국학회지의 논문 게재가 꾸준히 시도되었고, 창립 50주년까지 총 1939건의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의 개재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며 대한 성형외과학회의 학술적 우수성을 대내외에 입증하였다. 1974년 첫 발간하여 7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던 대한성형외과학회지는 2011년 11월호를 마지막으로 한글 학술지에서 영문학술지로 전환하여 2012년 1월호부터 ‘Archives of Plastic Surgery’로 학술지명을 바꾸고 영문 온라인 투고시스템을 구축하여 전 세계 누구나 논문을 투고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PubMed, SCOPUS 등 국내외의 저명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되어 검색을 용이하게 하였다. Archieves of Plastic Surgery 저널은 현재 아시아 최고의 성형외과 학술지임을 자부하며, 앞으로 전 세계적 최고 등급의 학술지가 되기 위해 계속 발전 중이다.